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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악필(惡筆)도 예술 작품이 되네?”

기사승인 2024.06.14  07: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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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캘리그래피에 대한 고찰(考察)-

  

   
 

우리는 누구나 글씨를 반듯하게 잘 쓰기를 바란다. 그러나 마음과는 다르게 술 취한 사람 걸음걸이처럼 삐뚤빼뚤하게 쓰기 일쑤다. 

그런 글씨를 고쳐보려고 펜글씨 교본도 사서 연습하고, 서예 학원에 다니기도 한다. 그런데 세상이 180도 달라졌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들이 막 쏟아져 나온다. 이런 세상을 따라가고자 하는 나의 잰걸음이 애잔하게 느껴질 정도다.
 
인터넷 보급과 기술 발전은 사람들의 손에서 펜을 놓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펜보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가 더 편한 세상에 살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스마트폰에 직접 메모하고, 스마트폰으로 웬만한 문서 작업도 가능하고, 신분증이며 신용카드도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간 시대다. 
 
그러다 보니 편지 쓸 일도 거의 없다. 문자나 카톡, 메일 등으로 편리하고 신속하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이제 펜으로 노트에 글을 쓰는 일은 구태의연하게 여겨진다. 하여튼 참, 놀라운 세상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 펜으로 쓰는 게 더 익숙한 세대다. 
 
만년필로 글을 쓸 때면 노트 위에서 사각사각하는 마찰음이 마치 하얀 눈 위를 걸을 때 뽀드득거리는 소리처럼 짜릿한 상큼함으로 다가와 좋다. 
 
오십을 넘긴 어느 날, 오광대의 탈처럼 생긴 괴상하고 독특한 형태의 글씨를 보았다. ‘저게 뭐지?’ 하는 호기심이 생겨 알아보니 서예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캘리그래피’이다. 
 
이름도 생소한 캘리그래피는 서예처럼 딱히 정해진 서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전형적인 형식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는 곧 자유분방함을 말한다. 자유분방하다고 해서 무질서하거나 무규칙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자유로움 속에도 엄연히 질서와 규칙이 존재한다. 
 
이상하고 괴이하기까지 한 형태의 글자를 보면 “어, 저렇게도 쓸 수 있네.”라며 글쓴이의 독창성과 창의적인 발상에 놀란다. 
 
붓과 각종 펜은 물론이고 나무젓가락, 이쑤시개 등 주변에 글씨를 쓸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붓 대신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캘리그래피도 예술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으니 문화적 깊이도 갖추고 예술적인 멋도 있어야 한다. 문자의 함축적 의미와 미적인 효과도 나타나야 한다.
 
내가 몇 년 동안 혼자서 고수들의 작품을 따라 쓰며 깨달은 캘리그래피의 장점 네 가지다.
 
첫째, 편안함이다. 전통 서예가 가진 서체의 형식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냥 자신의 글씨체로 쓰면 된다. 다만, 조미료처럼 미적 요소를 약간 가미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재료에 대한 부담이 없다. 서예처럼 문방사우(文房四友)가 필요 없다. 집안에 굴러다니는 사인펜, 매직, 색연필 등 아무것이나 가능하다. 
 
셋째, 공간이나 시간의 제약이 없다. 식탁이나 거실에 앉아 다양한 엽서지에 마음에 닿는 글귀 한두 줄 쓰면 된다. 
 
넷째, 정서적· 심리적 안정에 도움을 준다. 명언이나 좋은 글을 찾아 쓰면서 자신을 성찰(省察)하고 사유(思惟)하는 시간이 된다. 이처럼 캘리그래피는 한마디로 생활예술이다. 
 
캘리그래피 고수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승무(僧舞)의 소맷자락처럼 나풀거리다가 돌고래가 꼬리 털며 물 밖으로 솟구치듯 하고, 어라? 하는 순간, 깜찍하게 돌아서서 미소 짓는 어린이 모습을 하고 있다. 
 
한석봉이나 왕희지처럼 명필이라 추앙받는 이들의 글씨를 보며 자란 우리 세대는 요상한 캘리그래피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그 시대의 가치관 속에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예술 분야도 다르지 않다. 
 
캘리그래피가 서예의 한 분야로 자리 잡고 수많은 광고나 간판, 영화 포스터 등에 쓰이는 것은 근대사회의 발전에 따라 표현양식이 더욱 다양화되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예술 고유의 모습이다.
 
캘리그래피는 전통 서예와 차별화된 글자구조를 창의적이고 독창적으로 새롭게 구성하는 일이다. 
 
다양한 글꼴 스타일을 사용하고 다양한 형태의 글씨를 결합하여 독특한 모양을 만들어 낸다. 최근에는 캘리그래피 고수들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서체를 개발하여 교본으로 출간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굳이 교본이 없어도 되고, 악필이어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캘리그래피라고 생각한다. 
 
캘리그래피에서 몇 가지 지켜야 할 요소들을 살펴보자. 
 
먼저, 글씨를 알아볼 수 있는 가독성은 필수 요소다. 읽지 못하는 글자는 그림에 가깝다. 글자는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또, 유연함과 리듬감을 살려야 한다. 획의 굵기와 크기 등으로 변화를 주면서 작품의 의미가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일한 굵기와 크기는 캘리그래피의 맛을 낼 수 없다. 그리고 구도를 잘 잡아야 한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분방한 캘리그래피라도 글자를 조화롭게 배치하는 미적인 구도는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독창성과 창의적인 모습을 가져야 한다. 고수들의 글씨체를 따라 하기보다는 자신의 글씨체로 맛을 내고 멋을 살릴 수 있으면 된다. 이런 몇 가지 규칙만 지킨다면 악필도 멋진 작품으로 변신할 수 있다. 
 
이제 당신도 예술은 어렵다거나 늦었다는 생각을 버리고 편안하게 부담 없이 그러나 과감하게 도전해 보자. 
 
그 순간, 당신은 멋진 캘리그래퍼(calligrapher)가 될 수 있다. 작은 엽서나 액자, 도자기 등에 나만의 작품을 만들고 인생에 지침이 되는 좋은 글귀도 만나면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려보자. 
 
천대받던 나의 악필이 나만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져 서재나 거실에 걸어둔다면 얼마나 뿌듯하겠는가, 
(※固城文化 제20호(펴낸 날 2023년 12월 20일)에 실린 글을 수정, 편집한 것입니다.)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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