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홍우 고성문협 자문위원 |
배려는 교양과 연관된다. 교양서적 중에 배려를 위한 책자는 많다.
그러나 교양서적은 흥미가 없어 기본예절을 필요로하는 사람이나 읽을까 대체로 피하는 편이다.
학교에서도 도덕과 윤리 교과서가 있으나, 평균 점수를 높이기 위한 과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상생활 중에 말이나 행동에서 남을 위한 배려를 잘하는 사람이 호감을 얻는다.
남에게 호감을 얻는다는 것은 출세의 지름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보기에 좋은 음식부터 먹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식 앞에서 어머니는 다르다.
자식 앞에 맛과 영양가가 높은 음식을 놓고서는 때로는 속이 안 좋다면서 좋은 음식을 피하면서 자식이 많이 먹기를 바란다.
자식을 위한 사랑과 배려이다.
일본 어느 시골 상점에 남루한 옷을 입고 아기를 업은 젊은 엄마가 분유를 사러 왔다.
값을 물어보더니 생각보다 비쌌던지 아무 말 없이 내려놓고 가게 문을 나선다.
이것을 본 점원이 급히 분유통을 찌그러뜨린 후 아이 엄마를 불러 이 분유는 통이 찌그러져서 팔 수 없으니 반값에 가져가라고 했단다.
그 점원의 따뜻한 배려가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내가 경험한 배려에 대한 주변 이야기 몇 가지를 하려고 한다.
목욕탕에서 남탕에는 화장품과 빗, 귀이개를 담은 통이 있다.
내가 이용하려고 보면 이것들이 제자리에 놓여 있지 않고 아무 데나 흩어져 있고 귀이개도 폐기 통 바깥에서 뒹구는 것을 본다.
공공장소의 표어 중에 ‘깨끗한 사람은 머물렀던 자리도 깨끗합니다’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소아마비를 앓아 수족이 좀 불편해 보이는 사람이 두 아들을 데려와서 정성스레 깨끗이 씻기는 것을 보았다.
반대로 건장한 청년이 아들과 함께 세신사(때밀이)에게 맡겨 씻는다.
남의 사정은 알 수 없으나, 어느 쪽이 가족을 위한 배려인지는 잘 알 것이다.
나는 세신비도 아깝거니와 내 몸을 문지르면서 피부 마사지를 한다고 생각하며 운동 삼아 하고 있다.
어떤 때는 아이들이 세숫대야를 가지고 온탕이나 냉탕에서 즐겁게 노는 것을 본다.
나는 눈에 좀 거슬려도 철없는 아이들이라고 묵인을 하는 편이다.
분명 부모와 같이 왔을 텐데 그럴 때면 아이를 다스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르는 척 그냥 두는 사람도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 다니는 아이가 너무 소란스러우면 “너 어느 학교 다니니?”라며 경고하기도 한다.
나는 어느 날 예사로 몸을 닦는 수건에다 코를 풀었다.
목욕실에서 나오니 땀과 묽은 코가 나오길래 무심코 푼 것이다.
옆에 있던 젊은이가 “왜 수건에다 코를 푸느냐? 휴지가 걸려있지 않느냐?”라며 주의를 시켰다.
보기 싫었던가 보다.
내 생각에 수건은 빨래방에서 깨끗이 빨아 올 것이라 여겼다.
그때에는 네가 왜 간섭을 하느냐? 라는 언짢은 기분이 들었으나, 다음부터는 수건에 코를 푸는 습관이 고쳐졌다.
동요와 함께 “차들은 오른쪽 길 사람들은 왼쪽 길”이었던 교통 법규가 언제부터인가 차와 사람이 같이 오른쪽으로 다니게 되었다.
옛날에는 보행자의 앞에서 차가 오니 경각심과 아울러 피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어떤 규정에서 정한 법규인지는 모르지만, 뒤에서 차가 오니 보행자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시골에는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에 ‘노인 보호 구역’이라며 시속 30㎞의 저속 표시판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감시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속도를 낮추지 않고 달리는 차들을 본다.
아마 운전자가 바빠서 그러겠지만, 노인들은 감각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주변 상황 판단에 오류를 일으켜 교통사고가 날 수 있다.
농로를 산책하다 보면 트럭들이 지나다닌다.
내 옆을 스칠 때 어떤 운전자는 속도를 낮춰 지나가지만, 막무가내로 달려온 속도 그대로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난청이라 무심코 중앙으로 옮길 수도 있다.
더구나 비가 와서 물이 고인 길에서는 더욱 주의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나라는 의료대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의료진은 생명을 위한 본분을 다하고, 환자는 자신만을 위하여 대형병원에 치중하지 않고 지방 병원을 이용하여 국민의 생명을 위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지난 추석에는 정부나 국민 모두 의료대란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추석 연휴 중 심한 의료대란은 없었다고 한다.
응급실 환자가 있었으나 119의 도움으로 먼 거리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었으며, 응급실 의사들도 자기 본분을 다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가 유행하여 누구나 마스크를 쓰고 기침 예의도 지켰다.
올여름 더위에는 감기 유행으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자신의 건강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감기에 걸린 사람은 이웃을 배려하여 마스크를 썼다고 본다.
나는 평소 농담을 자주 하여 지인들로부터 “세 사람 부화 감은 된다”라는 말을 들었다.
나름 둘러대 은유로 말하는 것을 상대방은 이해를 못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 습성은 아직도 남아 있지만, 젊을 때는 남에게 거슬리는 농담을 했으나 지금은 남이 듣기 좋은 농담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아내는 지금도 내 말에 화를 자주 내는 것을 보면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이것도 고쳐 남이 듣기 좋은 유머를 해야겠다.
배려(配慮)는 남을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는 마음이지만, 한자 뜻을 풀이하면 ‘걱정(慮)을 나눈다(配)’이다.
우리말 ‘역지사지(易地思之)’ 즉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남을 생각하는 것이 배려이다.
사람이 한평생 자신과 가족을 위해 살지만, 남에게 배려할 일이 많다.
남을 돌아보는 마음가짐으로 살아 보자 자신과 세상이 한층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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