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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길이어야 했을까?

기사승인 2024.09.27  04: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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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옥 철(전 경상남도의회 의원)

추석 연휴 때 대학생인 딸과 남산을 찾았다. 

처음으로 함께 남산에 오른 것은 딸이 다섯 살 때였다. 
 
그때 신나게 재잘거리던 모습이 떠올라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지어진다. 
아름다운 추억은 홍시처럼 맛나다. 
 
한 입 깨물면 그 달콤함에 놀라기도 한다.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추억들을 모아 가며 남산 숲길을 걷는다. 
 
“어~ 길이 사라졌다.“ 아니, 새 길이 만들어졌네. 
 
맨발걷기 길이다. 
그 길을 걷고 있는 동안 하나의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왜, 이 길이어야 했을까?”
 
군민들이 가장 사랑하고 즐겨 찾는 곳이 남산이다. 
 
접근성이 좋은 점도 있지만 어린이나 노약자가 오르기에도 부담스럽지 않다. 
 
필자도 자주 찾는다. 
 
아름드리나무와 수풀이 내뿜는 자연의 내음은 복잡하고 헝클어진 마음을 정리하고 풀어 준다. 
 
수십 년 넘은 소나무, 벚나무, 단풍나무, 굴참나무가 길을 감싸고 있어 포근함마저 느낀다. 
 
푸른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 온 햇살 한 줌은 다채로운 형상으로 길에 생명을 새긴다. 
 
가벼운 차림으로 올라 짙은 녹음으로 채워진 길을 따라 사색하기에도 참 좋다.
 
 전국에 맨발걷기 길 만들기가 열풍 수준이다. 
 
맨발걷기는 자세교정, 혈액순환, 발 근육 강화, 수면 개선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다. 상처나 부상으로 인한 질병 감염 위험이 있다. 
 
특히, 당뇨병이나 족저근막염이 있는 사람은 상태가 악화될 가능이 있어 피해야 한다. 
 
무지외반증, 평발이나 요족이 있는 사람도 무릎과 척추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맨발걷기의 효능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아 지나친 맹신은 경계하고, 상처나 부상을 입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운동 강도나 시간을 자신의 건강 상태에 적합한 수준으로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남산 6백여 미터에 마사토와 황토를 혼합하여 맨발걷기 길이 만들어졌다. 
 
맨발걷기 길은 대개 건강에 좋다는 황토나 흙 등 친환경 자연소재로 만든다. 
 
그러나 주민의 건강 증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반대나 이의를 제기할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민을 위한다면 위치나 소재 등에 관한 의견을 충분히 듣고 담아야 한다.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지키려는 깊은 고민은 했을까?, 
 
행여 시대에 맞지 않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은 아니었을까?, 이 길이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쉴 새 없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새로 만든 맨발걷기 길은 읍내에서 거의 유일한 흙길이자 자연의 길이었다. 
 
산책이나 가벼운 달리기를 하기에 좋았다. 
 
저만치 나무뿌리가 튀어나와 조금 위험해 보여도, 작고 날카로운 돌들이 흩어져 있어도, 비 온 뒤에 빗물이 흐른 자국이 곳곳에 남아 있어도.... 그런, 자연의 민낯이 좋았다. 
 
상쾌한 숲 내음과 어우러져 풋풋함이 묻어나는 흙내음은 마음조차 겸허하게 만든다. 
 
자연의 길은 사색의 길이자 마음이 건강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숨 쉬는 길이다. 고유의 색과 멋을 가진 길이다. 
 
이야기가 있고 추억을 간직한 길이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자유로움과 공생의 길이다.
 
굳이 이 길이 아니어도 되지 않았을까? 남산에는 생태연못 인근으로 아기자기한 길이 만들어져 있다. 몽돌밭, 꽃무릇 동산, 식물 터널이 있고, 쉼터도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맨발걷기 길을 오르락내리락 재미가 있는 이곳으로 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백세공원, 스포츠파크 등에 만들 수도 있다. 
 
남산은 주민들의 쉼터다. 마음 챙김의 장소이자 삶의 한 부분이다. 
고성인에게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어느 개인이나 단체의 소유물이 아니다. 공공의 영역이고 군민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런 남산을 변경하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함께 논의하고 숙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랬다면 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는 이쁜 길을 떠나보내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 
새로 만든 길을 걷는 발걸음이 무겁다. 
 
가장자리에 놓인 대리석은 자연과 인간의 어울림을 허락하지 않는 선언문 같다. 
 
새 길은 울림이 없는 건조하고 정지된 길이다. 
 
생명력을 잃은 단조로운 길이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계산된 이기적인 길이다. 
 
운동화를 신고 걷는 나에게 소리친다. 
 
“운동화 벗어! 맨발로 걷지 않으려면 오지 마.” 이제 이 길에는 맨발로 걸어야 하는 의무감이 주어졌다. 맨발로 걷지 않는 나는 이 길에서는 이방인이다. 
 
인간은 편의와 효능을 핑계로 자연을 변경하거나 훼손한다. 
 
자연은 한번 훼손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그래서 더욱 신중하고 신중해야 한다. 
 
인간의 색으로 칠해진 남산이 낯설다. 
 
이 낯섦이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 아프다. 
 
이제 그 길은 그리움이 되었다. 
 
작은 아픔이 되었다. 
“왜, 하필 이 길이어야 했을까?”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저작권자 © 고성미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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