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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망태

기사승인 2024.04.05  10:4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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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춘 고성군 전 구만면장

봄이 깊어지면 산과 들이 푸르게 바뀌고 마을 앞 누렇던 언덕배기는 어린 풀이 돋아나 마을 친구들을 불러 모은다. 

우리는 어울려 놀이하다가 소먹이가 되는 풀을 베러 간다.
 
이처럼 우리는 소여물이 될 풀을 베는 일이 공부보다 더 소중하고 해야 할 일과로 자리매김이 된다. 
 
학교 파하고 집에 오면 책보자기를 마루에 휙 던져놓고 어머니가 쪄 놓은 보리 개떡을 입에 물고는 염소를 앞세워 미리 보아 두었던 쌍구네 영감 자운영밭으로 간다.
 
양지바른 언덕배기에는 벌써 삐삐라는 풀이 목을 길게 빼 들고 있다. 
 
마을 아이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소여물을 베기보다 앞다퉈 삐삐 뽑기에 정신이 없다.
 
입안에 든 삐삐는 달콤한 단물로 우리를 유혹한다. 
 
한 줌씩 뽑아 질근질근 씹으면 허기도 채우고 한참 씹다 보면 섬유질이 껌처럼 된다. 
친구 현석이는 동생을 늘 챙긴다. 
 
자신이 먹는 것 보다 동생 챙기는 몫이 훨씬 많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것만 골라 가져간다. 
 
철이 들 나이도 아닌 우리 또래인 현석이는 아버지가 안 계시니 더욱 동생을 챙기는 모양 같았다.
풀피리를 불어 누구 소리가 큰지를 뽑은 삐삐 내기도 한다. 
 
소년 시절이 엊그제 같았는데 세월이 흘러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언덕배기 둑방에는 풀도 무성하고 둑방 옆 쌍구 영감 논에 늘 자줏빛 자운영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봄의 정령을 모시고 있다. 
 
자줏빛 구름 같은 꽃이 핀다고 해서 그 이름도 자운영이다. 
 
자운영은 꽃 피기 전 부드러운 잎은 깨끗이 씻어 데친 후 초장에 묻힌 나물로 하면 입맛 없던 때에 봄기운처럼 군침을 돋운다.
 
꽃말은 그대의 관대한 사랑으로, 살아서도 사랑을 베풀고 죽어서도 땅을 위해 거름이 되는 헌신하는 식물이다. 
 
영국에서는 양이 뜯어 먹으면 젖이 많이 나온다고 하여 밀크의 참새 완두라고 한다.
 
자운영은 한평생 자식 키워 무한한 사랑과 보살핌을 내리는 어머니 같은 식물이라 여겨진다.
놀이를 하다보면 편을 나눠 벤 풀을 따 먹기 시합한다. 
 
자운영 밭은 놀이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넘어져도 다칠 일이 없다. 
 
주인의 호통이 있을 거라는 것은 아랑곳없이 깔아뭉개어 놀이를 하다가 남의 논보리밭으로 가서는 보리 곁에 수북이 자라고 있는 뚝새풀을 가득 베어 꼴망태에 주섬주섬 챙겨 담는다. 
 
뚝새풀을 일명 독새풀이라고 하는데, 논에 풀을 매지 않으면 자라는 잡초의 일종이다. 
 
봄이 되면 소에게 먹일 고급 사료가 된다. 
 
현석이 꼴망태는 방주처럼 어찌나 큰지 좀처럼 베어서는 가득 채우기가 힘들다. 
 
대마 줄기로 엮어 만든 것으로 어깨에 메고 다닐 수는 없고 등에 짊어지고 다녀야 한다. 
친구들은 다 채우지 못한 현석이 망태에 같이 풀을 베어 담는다. 
 
해질녁 노을이 더욱 아름답게 여겨진다. 
 
우리는 노을에 얼굴이 물든 것인지 상기된 것인지 볼그스름해진다. 
 
풀을 다 채우고 나서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놀이에 빠진다.
 
낫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는데 장에 갔다가 오는 길에 우리를 보고는 자기네 소여물 풀을 베었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걸음아 날 살리라고 줄행랑을 쳤다. 
 
쌍구 할아버지는 어릴 적 소아마비라 잘 달리지를 못하니 간신히 우리는 피할 수 있었다.
 
며칠 전 그 옛날의 둑길을 걸으며 논 옆을 지나쳤다. 
 
항상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쌍구 할아버지가 생긋이 웃으며 오늘도 소여물 풀 베러 왔냐고 묻기에 할아버지께서 지금 계시는 곳은 어떠신지와 편안하시기를 빌었다.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저작권자 © 고성미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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