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옥철 (전, 경상남도의회 의원) |
“군수님, 죄송합니다. ‘국비 80%’에 융자가 41%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군민들의 문제 제기를 무지(無知)함이라 생각하시고, 이번 사태를 소모적인 논쟁쯤으로 가벼이 여기실 줄도 몰랐습니다. 군수님을 부끄럽게 만들었다니 죄송합니다.“
건설비에는 융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지극히 기본적인(?) 내용을 모르는 군민들 때문에 군수님이 부끄럽다고 하시니 먼저 죄송하다는 말부터 해야겠다.
지난 주 목요일(6월 13일), 일자리연계형 지원주택사업(이하 ‘일자리주택사업’)에 대한 이상근 군수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군민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일자리주택사업은 민주당의원 3명의 기자회견, 행정사무 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의 질타 등으로 한동안 지역신문 1면을 장식하고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필자도 고성미래신문에 기고를 하였다.(5월 24일자 15면,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
일자리주택사업은 고성군이 작년에 ‘국비 80% 확보’라면서 대대적인 홍보를 하였다.
그것도 총사업비가 944억 원이나 되니 ”고성군이 큰일 했네“라며 군민 모두가 기뻐했을 것이다.
그런데 국비 80% 속에 융자 41%(366억 원)가 포함되어 있었다.
융자는 고성군이 주택기금에서 빌린 돈이다.
쉽게 말해 대출받은 돈이다.
대출은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
그렇다면 군비는 230억 원(용지비 포함)이 아니라 무려 700억 원(이자 포함)이 넘는다.
이런데도 군민들이 화내는 것이 무지한 탓이고 부끄러운 일인가?
서민들은 시중은행에서 10%에 달하는 이율로 돈 빌리기도 쉽지 않은데 고성군은 1% 이율로 수백억 원을 대출받았으니 대단한 일을 하였다고 무조건 환영하고 칭찬해줘야 하나?
필자를 포함하여 군민들은 국비라면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돈이라 여긴다.
누구도 국비 속에 융자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성시장에 나가 군민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자.
국비라는 말 속에 융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기본적인 사항을 알고 있는지.
군수가 말한 「공공주택특별법」 제3조제2항과 「주택도시기금법」, 「장기임대주택법」 등 관련 법안들을 아무리 뒤져도 건설비에 융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조항은 찾지 못했다.
이번 사태는 사업 기간이나 이율 몇 %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기고에서 말했듯이 이번 사태의 본질은 고성군이 국비 80%에 융자 41%가 포함된 사실을 숨겼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반드시 의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그런데 의회 보고조차 명확하게 하지 않았다.
이율 1%를 강조하는 군수의 모습을 보면서 고구마 두어 개 먹은 듯 가슴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니 답변이 명쾌하지 못하다.
그러니 듣는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군민 누구도 이 사업의 타당성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굵직한(?) 공모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애쓴 국회의원, 군수, 담당 공무원의 노고(勞苦)를 폄하(貶下)하지도 않았다.
이 사업이 예상대로 잘 진행되어 군수님의 말씀처럼 우리 고성에 젊은 근로자들이 많이 들어오고 지역도 활기를 띤다면 어느 누가 싫다고 하겠는가?
군민들과 의회에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 부분을 정확히 파악하여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잘못이 있다면 사과하고 합당한 조치를 취하면 될 일이다.
더욱이 이번 사태는 정쟁(政爭)이 아니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불성실한 의회 보고와 군민을 기만한 행정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도 사과는커녕 별일 아니라는 듯한 군수의 당당함(?)을 군민들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
특히,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왜 사업을 포기했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군수의 답변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것은 자기들 사정이다”라며 별일 아닌 듯이 치부해버리는 군수의 태도는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LH는 공공임대주택사업을 전담하는 전문적인 공공기관으로 일자리주택사업 중 서외지구를 고성군과 공동시행하기로 하였다.
그랬던 LH가 경상남도 컨설팅 결과 서외지구의 손실이 30년간 48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공동사업을 포기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 이유를 파악하여 리스크(risk, 투자에 따르는 위험)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크든 적든 모든 사업은 리스크를 수반하고 있다. 리스크는 다각도로 파악하여 없애거나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단순하게 숫자 놀음만으로 사업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긍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군수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는 내내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군수는 이번 일자리주택사업이 고성의 인구 감소를 막고 ‘청년들을 유입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며, ‘청년이 찾아오는 젊은 도시 고성 건설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고성이 언제부터 청년 도시 건설이 목표였는가?
지금까지 깨끗하고 저렴한 주택이 없어서 청년들의 유출을 막지 못했다는 말인가?
지자체마다 청년 유입과 인구 증가를 위해 현금 지급 등의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질적인 인구 증가로 이어졌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정치지도자의 시대착오적 인식은 잘못된 정책 판단으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결국 지역과 지역민의 몫이 된다.
지방의 인구 감소는 어느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이고 시대적인 흐름이다.
해방 이후에는 산업화로 경제성장에 집중했다면 선진국에 들어선 지금은 삶의 질이 중요하다.
인구 증가보다는 지역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군민들의 행복이 우선되어야 한다.
교육, 의료, 교통, 환경 등 사회서비스를 더 충실하게 다지고 주민자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가장 살기 좋은 곳이 가장 좋은 관광지’라는 말이 있다.
군민들과 출향인 등 고성인(固城人) 모두가 자긍심을 가진 행복한 고성이라면 굳이 인구 증가에 매달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의회의 시간이다.
점검하고 살펴야 할 사항들이 많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의회에서 더 세심하고 철저하게 살펴 리스크를 없애거나 최대한 줄여야 한다.
부디 일자리주택사업이 군수님의 말씀처럼 문제없이 진행되어 군민들의 불안과 우려가 노파심이었기를 바란다.
이유야 어떻든 앞으로 군수님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도록 군민들이 더 현명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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