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홍우 고성문협 자문위원 |
신(神)을 믿는가? 세상에는 4대 종교를 비롯해 수많은 신앙과 그 종교를 운행하는 신이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지만,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고 오히려 지도자를 신처럼 섬기고 있다.
신뢰는 믿음이자 행복의 근원이다.
서로가 믿지 못하는 집단은 파멸하기 마련이고 불행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권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니 불신의 세상이 되었다.
국가의 근본인 입법, 사법, 행정, 교육 등 어느 하나 믿지 않는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정책은 신뢰를 잃었고, 국회에서 내뱉는 말들은 불신을 조장한다.
더욱이 법원 판결도 오락가락하며, 교육도 근본을 잃고 있다.
정치의 거울인 국회는 여야의 지나친 주장으로 다툼만 일어난다.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에서 어느 것 하나 뜻을 모으는 협치를 보지 못했다.
정부의 정책을 야당은 무조건 반대하고, 여당은 옹호 하기에만 급급하다.
그러면서도 자기들 밥그릇인 세비 인상에는 한길로 나갈 뿐이다.
이러니 국민은 국회를 불신임하고 국회 무용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사회불신은 교육의 영향도 크다.
교육은 학교 교육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 교육을 총망라한다.
부정적인 가정 즉 믿음과 사랑이 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무엇을 배우겠는가?
사랑과 신뢰보다는 부정과 불신만 배울 것이다.
학교 교육조차 신뢰하기 어렵다.
학교 교육은 교육과정에 따라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올바른 인성을 갖추는 기초교육 단계이지만, 요즘은 사교육으로 그 또래의 학생에게 특별한 영어 학습이나 심지어 정치 쟁점이 된 이과대학 진학반을 꾸려 교육한단다.
좌파 교사들은 교육과정은 제쳐 두고 자신의 비뚤어진 시각으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수업 시간에 현 정부의 비판이나 왜곡된 역사의식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가 있다면 그 밑에서 배우는 학생은 어떻게 되겠는가?
세상 모든 일을 부정적 시각으로 보며, 상대방의 장점보다는 단점 찾기에만 몰두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좌파와 진보를 같은 맥락으로 보지만, 엄연히 진보와 좌파는 다르다.
우리나라 서울 강남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선진지이다.
여기에는 교육을 입시 위주로 하여 소위 말하는 일류학교 합격자를 내고 있다.
고액 과외비를 들여 족집게 과외니 학원 등에서 성과를 거둔다.
부모 재력으로 강남지역에서 공부하여 일류학교에 다녔다고 모든 사람이 보람된 삶을 살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자기 부모의 덕으로 족집게 강사를 만나 일류학교에는 합격했지만, 인성이 바르지 못하고 한탕주의에 빠져 사회와 국가에 해를 끼치는 비뚤어진 사람이 될 수 있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받은 명품 가방이 도마 위에 올랐다.
재미교포 통일운동가인 최재영 목사라는 사람이 김건희 여사에게 300만 원 상당의 ‘디올’ 가방을 선물 했단다.
왜 선물을 주고받았는지는 본인들만 알 것이나, 법률에 따르면 엄연한 위반이다. 참여연대가 이 상황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했지만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됐단다.
이를 두고 여야가 다르게 해석하고 있으며, 윤석열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해명하면서 사과하기보다는 명품 가방을 ‘쪼만한 가방(파우치)’이라고 표현하여 오히려 분노를 샀다. 300만 원 상당의 가방이 쪼만한 것인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채 상병 특검법’을 발의했지만,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믿어야 한다’라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로써 윤석열 대통령은 15번째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야당 국회의원은 검찰이나 경찰의 수사를 믿지 않으며, 걸핏하면 거대 야당의 횡포로 특검법을 발의하고 이에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현실에서 누굴 믿어야 하겠는가?
현수막에는 ‘대통령의 거부권을 거부한다’라고 걸려 있다.
정치인이 자신의 종교를 벗어나 석가탄신일에는 사찰로, 성탄절에는 교회나 성당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본다.
나쁜 일은 아니지만, 너무나 속 보이는 짓이다.
성경에서 ‘보이는 사람은 믿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찌 믿겠는가?’라고 했다.
지금도 아프리카를 비롯한 미개 지역에서는 주술사가 병을 낫게 하고 있다.
현대 의학으로 볼 때 터무니없는 일이지만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
환자의 강한 믿음으로 병이 낫는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믿음이 독이 될 수도 있으나, 강한 믿음은 사경에 이른 사람도 살리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나는 기독교 교인이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 이끌려 억지로 교회에 다녔으나, 신앙심은 없었다.
직장 이력서에는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적었지만 직장 생활 중 나를 기독교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없었으며, 나 자신도 사이비 기독교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큰 병을 앓고 나니 믿음이 생겼다.
지금은 스스로 기독교인이라는 자부심이 든다. 믿음은 자각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정책이나 나라 안팎의 사정을 알려면 뉴스를 봐야 한다.
그러나 나는 정치 뉴스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 버린다.
왜냐하면, 서로 거짓이라 주장하고 진실을 왜곡하는데 들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근거 없는 주장과 무분별한 의혹 보도가 난무하여 스트레스만 쌓이니 정치권의 뉴스는 보기 싫은 것이다.
큰 사고가 일어나 나라 전체가 위기에 빠지는 것을 자주 본다.
사고 원인은 부주의나 불신에서 비롯되고 그로 하여 불행이 이어진다.
남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은 할 수 있으나, 사리사욕을 위한 거짓말은 삼감으로써 신뢰감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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